성로원의 개에게
성산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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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0 00:00
성로원의 개에게
나리야!
성로원 마당에는 울긋불긋 멋진 단풍이 들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날씨가 초겨울의 추위를 느끼게 하는 구나.
네가 성로원을 11월 3일에 떠났으니까 벌써 일주일이 된다.
우리가 아침에 수요예배를 드리고 나서 조금 있다가 13년간을 성로원에서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너의 죽음을 봤다.
마음이 얼마나 찡하던지....
13년이면 강산이 한번 변하고 또 변하고 있는 중이었어.
너는 개 나이로 80이 넘은 할머니 개였지.
자그마하고 눈이 너무도 예뻤던 너는 벌써 3년을 넘게 이가 다 빠져서 이가 없이 잇몸으로 살았구나.
눈에는 백내장이 끼고 사람처럼 기침을 하길래 병원엘 데리고 가니 심장병이라고 수술을 할 수는 없고 그냥 사는데 까지 힘겹게 살아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일까 목욕을 시킬때면 어김없이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숨을 못셔서 심장 맛사지를 해주면 너는 숨을 몰아쉬다가 감쪽같이 일어나곤 했어.
그것이 벌써 열 댓번도 넘게 있었던 일이고 요즘 들어서는 자주 자주 사무실 문 앞에서도 네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직원들이나 할머니들이 안타까워 했었지.
나리야!
13년을 성로원에서 산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인연이고 축복이었던 것 같다.
성로원은 유난히 개가 많이 살았었지.
푸들 4마리에 달마시안 3마리 똥개 잡종개 할거없이 어떤 때는 암컷들이 같이 새끼를 낳는 바람에 17마리가 우글우글 살던 시절도 있었다.
개를 좋아하는 나는 참 좋은 시절이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성로원이 아주 개판이었던 것 같기도 해.
너도 그때가 좋았지?
엄마개 아빠개 오빠개랑 같이 사무실에 들락거리고 공원에 놀러다니면서 한참 재롱을 떨때면 할머니들이나 직원들이 모두 귀엽다고 한마디씩 했었다. 그러다 한 마리씩 사고로 죽거나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약을 잘못 먹어서 죽거나 큰 개한테 물려서 죽고 참 너희 가족사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불행했던 것 같다.
너도 어쩜 사고로 죽을 수도 있었을 건데 워낙 소심하고 겁이 많아서 밖에 혼자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늘 사람옆에만 있는 바람에 지금까지 살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한마디로 가늘고 길~~~~게 산게 너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언제부턴가 네가 죽으면 어디다가 묻어줄까? 늘 생각하다가 성로원 앞마당 아름드리 은행나무 밑에 묻어주려고 했는데 땅에 너무 돌덩어리가 많다고 원장님이 햇볕이 잘드는 양지바른 뒷마당에 너를 묻어주었다.
나리야 너와의 추억을 잊지 않고 간혹 너를 기억할게.
나리야 너 때문에 참으로 행복했었다. 영혼이 없는 개지만 너와의 기나긴 시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거려지고 눈물이 나기도 한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성로원의 장수개 아롱이도 죽고 이제 너 밖에 안 남았었는데 이제 성로원에는 개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구나. 너희들은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잊게 해주기도 하고 어르신들의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잖아. 특별히 가족이 없는 어르신들은 유달리 너희 강아지들을 더 잘 보살펴 주시고 애정을 많이 주셨단다. 유난히 강아지들을 사랑하셨던 경수할배한테 너의 죽음을 말씀 드렸더니 많이 섭섭해 하셨어.
언제나 개를 사랑했던 경수할배하고는 개이야기를 하면서 더욱 깊은 사랑을 느낀단다.
날씨도 추워지는데 경수할배와 함께 너와 아롱이 달래 이야기를 하면서 너희들을 추억해줄게.
나리야!
잘~~~가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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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5일 성산일기) 성로원의 장수개 아롱이 이야기
12월입니다. 마지막 달랑 한장의 달력을 남겨놓고 세월은 빨리도 도망을 갑니다.
성로원에는 가는 세월과 함께 하루하루의 삶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어르신들과 성로원의 유명한 개 아롱이가 도망가는 세월앞에 긴 한숨을 내쉽니다.
아롱이는 14살입니다. 우리 성로원의 원조 개 아롱이도 이제는 늙어서 들리지도 않고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저 희미한 형체를 보고 자기에게 잘해주던 사람들을 뒤뚱뒤뚱 버겁게 쫓아다닙니다.
배에는 큰 혹이 달려서 예전에 북한 김일성 주석 뒷목에 달려있던 크기만한 혹이 달려있고 나잇살도 쪄서 매일 임신한 개라는 오해를 받는 할머니개입니다.
요즘은 신앙심도 깊어져서 아침마다 예배드리는 예배실에 맨 앞자리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새로오신 할머니가 처음으로 예배에 참석하면 반갑다고 혓바닥으로 신발을 핥아주기도 하며 누가 빠졌나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출석체크하는 건 기본입니다.^^
저녁에는 다 퇴근하고 당직자만 있는 시설에 할머니들 잘 주무시나 불침번을 보느라고 CCTV에 층층이 돌아다니는 아롱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월급도 안주는데 언제나 꾸준하게 건물마다 방범을 섭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왔다간거 직원들이 모를까봐 꼭 한번씩 이쁜짓(?)도 해서 욕을 바가지로 먹을 때도 많습니다.^^
경수할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한 아롱이는 이곳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는 개입니다. 맛있는 간식이나 우유를 아롱이를 위해서 갖다 주는 할머니들은 아롱이가 늙어가는 것을 굉장히 슬퍼하십니다. 정도 들고 당신들과 같이 늙어서 관절염을 앓는지 걸음걸이도 부실하고 요실금도 있는 개의 입장을 너무 자세히 알고 안됐다고 말씀하십니다.
날씨도 추운데 할머니들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아롱이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한 자 적어봅니다. 아롱이도 이 가는 세월을 얼마나 붙잡고 싶겠습니까? 성로원의 많은 추억을 같이 공유한 늙은 개 아롱이에게 올해에는 장기근속개상이라도 하나 줘야되지 않나 싶습니다.
아롱아 오늘도 추운데 불침번 잘 서고 할머니들 사랑 끊임없이 받고 사는 날까지 더 아프지 말고 잘 살아라.^^
(성로원 아롱이는 추운 겨울 어느날 성로원 앞 교회옆 골목길에서 14년간의 개 인생을 마치고 죽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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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22일 성산일기) 성로원의 개 달래이야기
달래야! 오늘 너는 또 피투성이가 되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구나. 너를 성로원에서 8년 동안 키우는 동안 너는 늘 암캐를 쫓아다니다가 부상을 당한게 벌써 몇번인 줄 아니?
몇년전에도 못난이 암캐 때문에 결투를 하다가 큰 개한테 물려서 바로 동물병원에가서 수십바늘을 꿰맸고 그 꿰맨 자국이 벌어져서 박정국의사 선생님이 수의사도 아니면서 무료로 너를 꿰매서 살려준 적이 있었지?^^
그러면서도 가끔 우리를 놀래키면서 그냥 저냥 잘 지내는가 싶었는데 아니 오늘 또 그렇게 큰 부상을 당해서는 피를 철철 흘리며 들어오는데 사무실에서 상담받던 사람들하고 다들 한바탕 놀라고 말았단다.
오늘은 저번 보다 더 큰 상처를 입었으면서도 눈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살려달라는 표정이었어.
나는 잠시 생각을 했단다. 아니 얘가 또 이게 무슨 일이람? 하면서도 상처 깊이를 보니 아주 큰 진돗개의 종류가 너를 물은 걸 알아차렸단다.
그래서 일단은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니 엑스레이를 찍은 결과가 폐가 하나 다 뜯겼고 갈비뼈가 몇개가 부러지고 너무 물린 자국이 크다는 거 있지.
나는 또 곰곰히 생각을 했단다. 이번 기회에 그냥 너를 안락사를 시킬까?하는 생각을 하고 말씀을 드렸더니 너의 눈이 너무 초롱초롱한 것을 보고 의사선생님이 그래도 살려는 의지가 많은데 일단은 수술은 해보는게 낫지 않겠냐고 말씀을 하시는 거야.
그래서 수술을 했는데 오늘이 고비란다.네가 아픈 걸 잘 참아내면서 이기면 낫는거고 그렇지 않으면 이제는 우리를 영영 못보겠지. 그래서 일단은 오늘 너를 병원에 두고왔지.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참 속상하다. 너는 암캐를 너무 밝혀. 우리 동네 암캐들만 쫙 꿰고 있어도 되는데 너는 남의 동네까지 진출을 해서 남의 집 암캐를 늘 넘보다가 겁도 없이 큰 놈이든 작은 놈이든 경쟁하는 놈들한테 덤볐다가 이렇게 큰 코를 다니는 거라구.
네가 바람필려다가 부상당했다는 소리를 들은 상록실 장화숙쌤은 "하여튼 사람이든 개든 여자를 밝혔다가는 그렇게 되는 거라구"하면서 엄청 흥분을 하더라구.^^
나도 너를 공격한 놈을 잡아야 할 텐데.... 어떤 놈이 너를 그렇게 처참하게 물었는지 현장을 못봤으니까 답답하기는 한데. 이 좁은 마을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찾아야 되겠어. 분명 너를 그정도로 물은 놈이면 "입에 피묻은 놈만 찾으면 되는데"....^^
이 동네 껄렁껄렁 다니는 놈은 세탁소집 백구밖에 없단 말야. 혹시 세탁소아저씨한테 전화를 해서 "백구 입에 피 묻었냐구"물어볼까? 어쩜 아저씨도 낌새를 채고 백구 입을 세탁했는지도 모르지.
어쨋든 내일부터는 너를 그렇게 만든 놈을 경수할아버지와 함께 찾아나서야 되겠어. 지금 태윤이도 너의 부상소식을 듣고 과자도 두개 먹을려다가 하나만 먹으면서 분을 삭히고 있단다.
일단 달래야! 모든 생각은 뒤로 하고 네가 빨리 나아야 되겠다. 너의 소식을 궁금해하면서 어떤 할머니들과 직원들은 달래 문병을 가야겠다는 직원도 있는 걸 보면 너는 살면서 성로원의 할머니들과 직원들에게 인심은 안 잃었었나 보다.^^
달래! 빨리 나아라. 그래야 네 동생 나리도 고아가 안되지. 너랑 같은 배에서 나온 푸들강아지 나리가 만약에 고아가 된다면 얼마나 불쌍하니?
자기 엄마는 달마시안에게 물려죽고 자기 아빤 약을 먹고 죽고 자기 오빠는 진돗개 백구한테 물려 죽고 자기는 고아가 됐다고 하면 너무나 사연이 깊고 불쌍한 개가 된단다. 그러니 나리를 위해서도 빨리 낫기를 바란다.
그럼 오늘이 고비라고 하니 고비를 잘 넘기고 내일 만나자. 안녕.
너를 8년동안 키워준 주인 백.^^
(달래는 수술후 하룻만에 병원에서 죽음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