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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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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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일기

이 사람이 사는 법.

성산홍보실 0 7323
저 산 너머 또 너머 저멀리 모두들 행복이 있다고 말하기에 남을 따라 나 또한 찾아 갔건만 눈물을 지으며 되돌아 왔네. 카알부세의 유명한 싯구절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아주 가까이 있음을 의미하죠. 굳이 그 싯구절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마음 먹기에 따라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에겐 천국이고 또 어떤 사람에겐 지옥이 되기도 합니다. 아주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단순함 이야말로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최고의 비결 같습니다. 우리 어르신도 그렇습니다.몸이 불편한 가운데서도 나름대로의 생활패턴을 즐기면서 하루 하루 행복해 하는 어르신이 있는가 하면 늘 욕구불만으로 가득차 분노와 원망으로 치를 떠는 어르신도 있습니다. 그럼 우린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어 가야할지 그 어르신들을 스케치 한번 해보면서 생각할까요?^^ 실비2층에는 B 할머니가 계십니다. 10년 전 쯤 중풍이 와서 침상에서 눕고 일어나는 일외에는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지만 늘 낙천적이고 긍정적입니다. 모닝커피로 하루를 시작하고 케어가 끝난 다음에 큐빅이 달린 핀으로 머리를 단장합니다. 시간이 나면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합니다. 2평이 채 안되는 침상이 할머니가 사용하는 공간의 전부이지만 할머니가 행복해지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즐비합니다. 등긁개. 매직. 커피. 간식.수건.양말...직원들이 보기엔 너무 지저분해서 확~~정리 해버리고 싶지만 할머니에겐 너무나 소중합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품도 할머니 손에만 들어가면 할머니 이름이 써져서 나옵니다. 그래서 양말 수건 이불 베개 등 성로원 공동 물품을 뒤지면 매직으로 써진 할머니 이름이 가장 많이 발견됩니다. 한겨울에도 딸기가 먹고 싶으면 사먹어야 하고 돈이 좀 들더라도 이쁜 옷을 사 입어야 합니다. 맛잇는 거 사서 직원들에게 쭉~~나눠주는 인심도 있습니다. 자원봉사자 관리도 잘 합니다. 일대일 친분을 활용해서 양딸까지 삼고 계속적인 관계를 유지합니다. 직원들을 호출할 일이 있으면 직원들이 <잠깐만요~>라고 양해를 구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열번이고 스무 번이고 불러대는 끈기가 사람을 피말리게 합니다.<할머니~ 잠깐만 기다리시라고 말씀 드렸잖아요..참!!> 이런 원망에 한마디로 일축합니다.<아! 미안해요>. 남이야 화나거나 말거나 할머니 자신은 뒤끝이 없으니 세상 정말 편히 사는 분 같습니다. 식사속도도 상당히 느립니다. 다른 분에 비해 배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므로 양치까지 끝내려면 직원들이 퇴근도 못하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합니다.그래도 개의치 않습니다.세월아 네월아~~유유자적 하면서 식사시간을 즐깁니다. 할머니는 할머니 나름의 세계를 즐기고 음미합니다. 실비2층 그 옆방엔 B 할머니 못지 않게 자기 삶을 즐기는 P할아버지가 계십니다. P할아버지 역시 오래 전에 중풍이 와서 거동이 상당히 불편해 아주 짧은 거리를 옮기는 데도 상당한 시간을 요하며 노인성 난청으로 귀가 아주 깜깜절벽 입니다. 그러나 할아버지 역시 할아버지만이 누리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실내가 금연구역이라 뒷베란다로 한참을 걸어나가야 하지만 하루에도 몇번이고 그 한대의 담배를 피는 즐거움을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뒷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피웁니다. 그리고나선 방에 들어와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침상에서 엎드리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세상에서 제일 편한 포지션으로 <읽기>를 합니다. <읽을꺼리>는 너무나 다양합니다. 조선일보, 신동아, 법구경, 생활법률 365, 역사소설, 무협지, 삼국지, 성산회지....제가 보기에는 닥치는 대로 손에 집히는 대로 읽는것 같습니다. 침상은 이불과 신문지, 책으로 뒤엉켜 엉망으로 해놓고도 줄기차게 읽습니다. 심오한 뜻을 다 알고 읽는지 그냥 글자만 읽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암튼 그런 고상한 취미가 무료한 삶을 고양시키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록실의 S 할머니의 경우는 삶의 즐거움이 너무나 독특합니다. 너무 똑똑한 나머지,직원들이나 다른 할머니를 있는대로 무시하고 매사에 꼬투리를 잡아 말싸움하는 게 큰 즐거움이니 이를 어찌합니까? 할머니는 K여고를 나와 K대학교 의과대학을 다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마나 유식한지 달력에다 간단한 메모 형식으로 일기를 쓰는데 한자. 일본어. 영어 3개국어로 씁니다. 그 이유인즉은 이렇게 써야지 무식한 직원들이 못 알아본다는 겁니다. S할머니께서 물리치료실로 오셨습니다. <할머니 이쪽으로 올려가셔야죠?> 이 말에 "O 선생, 귀 좀 대봐라" 하십니다. 귀를 갖다 대었더니 작은 소리로 소근소근 거립니다.< I don"t like her.> 다른 무식한 할머니가 알면 실례될까봐 영어로 흉을 보는 쎈스!! 식판에 놓인 생선을 보고 그냥 넘어갈 리가 없습니다.유식하고 논리적으로 따져야 합니다. <어두육미(魚頭肉尾)>라는 말도 있는데 나는 왜 꼬리를 주는 데???> 직원들이 말을 합니다. <할머니!! 오늘따라 유난히 꼬리부분이 많거든요?> 그럼 맘에 드는 식판으로 고르세용~> 이 말에 다른 식판을 살펴보고 살이 많은쪽 생선으로 고르시는 할머니. 할머니에겐 할머니 소유로 된 작은 아파트 한채가 있어 9월달에 또 재산세 청구서가 날아왔습니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너무나 억울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내 아파트는 1층도 아니고 공중에 붕~떠있는 고층인데 왜 땅을 밟고 사는 1층 사람들이 돈을 내야지 공중에 붕~떠 있는 사람들까지 돈을 내야 하느냐 말이야? 아이고 억울해~~> 뜨악!! 정말 기가 막힌 논리입니다.그 말에 직원이 한소리 합니다. <할머니.할머니도 다니실때 땅 밟고 다니지 말고 공중에 붕~떠서 다니면 세금 하나도 안 내셔도 될낀데~~ㅎ> 이 말엔 아무런 대꾸가 없습니다. 그렇게 똑똑한 할머니께서 종이 기저귀는 얼마나 아끼시는지...종이 기저귀가흠뻑 젖었는데도 말려서 쓰고, 몇 번 쓰니까 접착 부분이 말을 안 듣자 핀을 꽂기도 하고 스카치 테입을 붙이기도 하고 심지어 실로 꿰매기 까지 하십니다..종이 기저귀 회사에서 울고 갈 일입니다.. 어떤날 기분좋으면 할머니, 직원에게 칭찬을 하십니다.< O선생~ 오늘 따라 와 이래 참하노? 정말 이쁘네> 직원들이 그 말에 순진하게 <할머니 고맙습니다!> 이랬다간 큰 코 다칩니다. 돌아서면 한마디 하죠.<치~이쁘다는 말에 저래 좋아하는 거 봐라~> 단순히 노인의 심리적인 특성으로 이해를 하기에는 직원들을 너무나 힘들게 하는 S할머니..가까이 하기엔 당신의 교양은 너무나 부담스럽습니다. 같은 지붕아래 살면서도 이렇게 삶을 조용히 즐기는 분이 있는가 하면 매사를 뒤틀기 때문에 무엇보다 당신 스스로를 힘겹게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러한 대조적인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는 배워갑니다. 우리는 이 다음에 이런 상황이 주어졌을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현명한 인생관을 위해 정말 정말 노력해야 한다라고... 이 가을!! 맘껏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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