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와 꽃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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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와 꽃잎

성산홍보실 0 7585
완연한 봄입니다. 성로원 마당도 울긋불긋 봄꽃이 마냥 이쁜 짓을 합니다. 그러나 색색가지로 고운 자태를 뽐내볼 틈도 없이 봄바람에 살랑이다가 땅에 떨어져버리는 꽃잎의 슬픈 마음을 그 누가 알겠습니까? 혹시 상우할배는 아실랑가???? 상우 할배는 마당에 꽃나무를 마치 사랑하는 여인의 집 앞에서 온종일 기다리는 스토커의 모습으로 꽃나무가 빵꾸가 나도록 지치지도 않고 꼿꼿이 서서 쳐다봅니다. 그러다가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기라도 하면 땅바닥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쓸어 담아버립니다. 할배가 조금만 여유가 있거나 꽃들과 친해지면 좋으련만 우리의 할배는 왜 그렇게 꽃잎파리가 땅바닥에 누워있는 것을 보지를 못하는 성질일까요?^^ 혹시 할배는 꽃잎이 흐드러지게 피는 계절에 군대에서 사랑하는 여인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건 아닐까요? 꽃잎이 이별을 고했던 여인과 닮았던 것은 아닐까요? 꽃잎만 보면 떠나간 여인의 얼굴이 떠올라서 “에라~잇 보기 싫은 여인아 !! 쓰레기 봉지에나 들어가라“하면서 쓰레기 봉지가 미어터지도록 꾹꾹 밟아서 넣는 건 아닐까요? 어느 누구하고도 말하기를 싫어하시는 할배. 누가 일부러 말을 걸지 않는 이상에는 단 한마디도 누구와 대화를 안하시는 할배. 군대에서 어떤 일이 있은 후부터 자폐증세를 보였다는 할배는 말을 잊은 그대가 되어 언제나 무관심한 표정으로 일관합니다. 상우할배와 경수할배 두 분이서 사시는 방을 들여다 보면 아무 말 없이 두 분이서 서로를 바라보면서 죽은 듯이 앉아계십니다. 서로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저 멍하니 두 분이서 앉아 계시는 데 다른 방에 계신 할아버지들처럼 갈등을 느끼지도 미워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당신은 당신대로의 사연이 있겠지? 나는 나대로의 사연이 있다. 우리 서로 상대방의 지나온 이야기나 슬픈 사연에 대해서는 절대로 얘기하지말자. 우리 본연의 모습으로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면서 그냥 이렇게 살자! 아마 이렇게 합의점을 찾은 사람들처럼 절대로 절대로 남의 일에 간섭 안하고 묵묵히 하루 하루를 살아냅니다.^^ 늘 같은 방에 계신 어르신들끼리 지지고, 볶고, 싸우고, 울고, 사니 못사니 하면서 방을 바꿔달라느니 먼저 왔다고 텃새를 부리느니 모든 간섭을 다 한다느니 하면서 갈등을 일으키시는 분들에게는 어쩜 가장 행복한 짝꿍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식사시간인 줄도 모르고 마당 한 켠에서 꽃잎을 쓸고 계시는 할배를 보면서 안쓰러움에 친구가 되어 드리고 싶어도 마음을 안 열어주는 할배의 냉정함에 가슴아려하면서 3월이 가기 전에 한 자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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