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성산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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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9 00:00
아침 저녁으로 기온차가 많이 나는 계절입니다. 아침에는 무척 춥지만 낮에는 포근하다는 기상캐스터의 일기예보에 맞춰 어르신들과 직원들이 적당한 옷을 입고 출발을 하였습니다
뭐시냐 어디메를 우리가 가야하는 가?
오~~오늘은 신할머니의 고향 김천과 성할머니의 고향 고령땅을 밟다 오면 되겠군요.
신할머니와 친한 할머니들이 친구의 고향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같이 나섭니다.
성할머니는 당신이 가장 좋아하며 “복실이”라는 애칭까지 지어주며 이뻐하던 석선생님에 의해 휠체어를 타고 마당에 나오시네요.
같이 동행하는 직원들도 고향을 찾아가는 주인공들도 곁다리로 동행하는 할머니들도 처음에는 다들 룰루랄라 즐거웠습니다.
차안을 보니 여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간식으로 삶은 고구마와 삶은 계란과 귤 바나나등 배고프지 말고 입도 즐겁고 행복하라고 주방에서 준비들도 많이 해줬습니다.
대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땅인지라 천천히 출발을 하였습니다. 가는 중에 신할머니가 은근히 귀엣말을 합니다. “내가 30년을 살던 고향인데 지금은 남동생밖에 없습니다. 남동생도 사정이 안좋습니다. 혹시 가서 집도 잘 못사는데 다른 사람들이 흉을 보면 어떡합니까? 그리고 나도 동생한테 제주도에서 왔다고 말했으니까 절대로 시설에서 왔다고 말하지 마이소”하시면서 먼저 입막음을 하시네요.
그곳에 도착을 하니 신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은 차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게 하시면서 30년만에 만나는 동생하고도 계면쩍은 표정으로 두분이서 대강 얼굴만 보고는 얼른 가자고 재촉만 하시네요.
잠깐~~~~이게 웬 일?
자기 고향에 그렇게 가보고 싶다고 졸라대던 할머니의 마음이 갑자기 바뀐 것입니다. 혹시 가난한 당신네 친정을 보고 다른 어르신들이 수군댄다고 하시면서 얼른 가자고 졸라대기 시작을 하시는 겁니다. 부끄럽다는 겁니다. 아니~ 할머니 부끄럽기는요 다들 사는게 힘들고 살아왔던 과거들이 힘들었지만 예전에 살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그 그리움을 해소시켜드릴 목적으로 시작된 고향땅 밟기가 이렇게 허무하고 싱겁게 끝나본 적이 없었는데...
타지에서 고생하고 세상에서 사람들 때문에 돈 때문에 가족때문에 상처받았던 사람들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서 그 근처만 가도 눈물부터 주루룩 훌리는게 여태까지의 관례였는데... 우리는 너무나 이상했던 것입니다. 무조건 인사도 잘 안하고 빨리 가기만을 재촉했던 할머니의 뜻을 무시할 수 없어서 그저 돌아서 오기가 바뻤지만 영 찜찜하고 아쉬웠던 고향땅 밟기 였습니다.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인지라 모처럼 나가신 어르신들에게 맛있는 점심을 대접해 드릴려고 아무리 김천 맛집을 찾고 스마트폰을 뒤져 파도 제대로 된 곳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왕이면 좀 더 맛있고 시설에서 안드셔 본 걸 사드릴려고 찾아서 차로 뱅뱅 돌아다니다가 결국 선택했었건만 에이~ 시시했습니다. 그걸 사드릴 수 밖에 없었던 건 우리가 유명하고 맛있는 맛집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나가면 좋은 음식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여태까지 나가서 외식을 해 본 이후 가장 점수를 짜게 줄 수 밖에 없었던 음식점을 골랐던 것이지요. 어쨌든 시장기가 너무 돌던 차에 어르신들은 그래도 맛있게 잡숴주셨습니다.
식사 후에 두 번째 성할머니의 고향을 찾아 나서봅니다.
할머니의 고향에는 지금 아무도 살고 있지 않습니다.. 살 던 집도 없어지고 고향에는 아무도 없지만 매번 원장님을 볼 때마다 내 고향에 좀 데려다 달라고 원하시는지라 그 지역만이라도 한번 구경시켜드리고 오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서 시도를 했습니다.
김천에서 그리멀지 않은 고향을 찾아 고령땅을 밟아본들 할머니의 동네는 거의 도시화되어서 시골의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높은 아파트나 신식 건물이 들어선 신작로를 따라 할머니의 주소지를 찾아갔어도 이미 그곳은 할머니가 살던 집이 아닙니다. 아무도 반겨주는 이도 기다려주지도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무작정 당신을 고령시장에 내려놓고 가랍니다. 휠체어를 의지해서 다녀야 하는 할머니는 무조건 고령시장에 내려놓으면 며느리를 만날 수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근거도 없고 전화번호도 없고 사는 곳도 없는 며느리를 만나기 위해서 할머니는 커피믹스 30개를 검은 봉다리에 꼭꼭 싸서 선물을 주시겠다고 들고 다니십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뜻대로 해드리지를 못했습니다. 고령시장 통에 내려놓으란다고 그렇게 할 수가 없는지라 고령지역을 휠체어로 모셔서 구경을 시켜드리는 걸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런후에 이제 할머니가 그리던 고향 땅을 밟아 보았으니 집으로 가시자고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나를 여기다 내려만 놔라.” “내가 찾아 갈 수 있다”. “내 며느리를 만나야 한다.” . “나는 여기서 혼자서라도 살란다.”등등 현실에 맞지 않는 고집을 피우는 할머니로 인해서 돌아오는 차안에서는 직원들이 할머니를 달래느라고 땀을 뻘뻘 흘립니다.
직원들은 집으로 오는 중에도 걱정이 태산입니다. 오늘 분명히 할머니가 흥분을 멈추지 않고 밤새도록 소리를 지를 것이고 그 뒷감당을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정말입니다. 할머니는 고향땅을 안밟느니만 못했습니다. 고향을 다녀오신 뒤 후유증이 더 커서 식사도 안하시겠다고 화를 내셨습니다.
(할머니의 기분이 상한 것을 안 직원들이 어제 밤에는 더욱 신경을 써서 할머니를 관찰한 결과 밤새 화를 내고 심기가 불편하시더니 아침부터는 다시 노래를 부르고 흥에 겨워하신 다는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