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무요원 류한승군의 글(인연의끈)
인연이라는 단어는 항상 사람을 설레게 한다. 보통 연인들에게 해당되는 단어라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에게 인연이라는 단어는 연인과의 관계는 아니다. 인연과 운명을 믿는 계기가 한 할머니 때문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곳에는 할머니들이 많다. 할아버지도 계시지만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어느 순간 할머니 옆에서 얘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가족'이다. 할머니들은 항상 당신들의 가족 얘기를 한다. 들어보면 속에는 '그리움'이 있다. 추ㅇㅇ 할머니 역시 그렇다. 할머니는 항상 손자 얘기를 하신다. 들으면서 몇 가지 사실을 알았다. 손자 이름과 나이, 할머니의 다른 가족관계까지 알아버렸다. 손자와 나이가 비슷한 나를 옆에 앉히고 바빠서 못 찾아 온 손자 얘기를 꺼낸다. 그럴 때마다 손자가 바빠서 그렇다고 해드린다. 어느새 손자의 대변인이 되어있었다.
할머니는 손자 편을 들어주시는 내가 좋은지 어느 순간 손자 친구로 착각을 하고 나를 대하신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역시 익숙해졌다. 아니, 좋아졌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할머니는 나를 보면 항상 반갑게 웃어주신다. 그 '웃음' 역시 싫지가 않았다. 누군가가 나를 향해 웃어준다는 것은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는 일이니까. 여기까지라면 인연이라는 아름다운 말을 쓰기에 부끄럽다. 여기에는 중요한 계기가 있다.
첫 번 째 인연의 계기는 갑자기 찾아왔다. 할머니의 휴대전화를 보게 되었다. 휴대전화의 배경화면 하단에는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여 할머니 따님의 주소가 적혀있었다. 그런데 주소가 어디에서 많이 보던 것이었다. 그것이 우리 집 주소와 같다는 사실, 바로 우리 윗집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가 않았다. 신기했다. 그 순간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번 째 이자 마지막 인연의 계기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할머니께서 내가 자리에 없을 때면 주위 사람들에게 당신 손자의 친구라고, 참 착하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 말을 곱씹어 봤다. 물론 칭찬을 들어서 사람이 기쁠 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된 칭찬은 부담을 줄 뿐이다. 내가 할머니와의 인연의 끈을 볼 수 있는 이유는 할머니의 믿음 때문이다. 나를 할머니 손자의 친구로 굳게 믿고 있는 그 사실 때문이다.
세상에는 신기한 일이 많다. 할머니 따님의 주소와 우리 집 주소가 같은 것이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신기한 일들이 보이지 않는 인연의 증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인연의 끈은 그런 거창한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의외로 단순했다. 바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믿음이다. 할머니가 나를 손자의 좋은 친구 생각하는 믿음, 그 믿음에 답하기 위해 내가 하는 행동이 할머니와 나의 인연을 만들어 준 것이다.
타인이 보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할머니와의 관계이다. 하지만 나의 믿음과 할머니의 믿음은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을 부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