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의 일기를 다시 올려봅니다 긴 시간이 지났어도 예전 일기를 읽다보면 그 때가 떠오르며 지금은 고인이 되신 많은 어르신들이 생각납니다) (2001년 일기) 李씨하면 全州 李씨를 쳐줍니다. 전주 이씨중에 이율곡선생님의 손녀인 이*희할머니가 우리 요양원에 계십니다. 늘 율곡선생님의 손녀인 것에 자부심이 대단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우리 이*희할머니는 키가 작달막한게 눈도 또한 작고 입도 작은게 손도 또한 작은 할머니지요.그러니까 한마디로 간략하게 말한다면 키 작은 할머니라는 얘깁니다.그래도 작은 고추가 맵다고 입이 아주 맵고 손매도 매워서 깔끔스럽고 솜씨도 대단한 할머니십니다.
거기다가 말은 얼마나 잘하는지 율곡선생님의 손녀만 아니면 아마 만담가로 풀리셨을 법도 한 할머니는 옛날에는 매파할머니처럼 중매도 많이 섰다고 하더군요. 앉아서 얘기를 시작하면 남이 끼어들 사이가 없이 혼자 다 해버리고 말도 너무 재미있게 해서 정말 시간가는 줄도 모를 정도로 이야기에 쏙 빠지도록 하시지요.
그런데 오늘 이*희 할머니가 자존심이 무지 상하는 일이 있었어요. 양로원에 계시다가 몸이 편찮으셔서 요양원으로 오신 어디를 가나 대장노릇을 하는 양로원의 이모모할머니가 이*희할머니방으로 이사를 오신겁니다.
그러지 않아도 별로 사이도 안좋고 만만치가 않은 사람인데 방에 들어 오자마자 담배를 피우려고 하면서"성냥없나?"이렇게 반말로 자기에게 물어보더라고 하면서 "성냥은 담배피우는 사람이 있지 우리가 무슨 성냥이 있노"하면서 한번 쏴주고는 화가 나서 바로 사무실로 내려와서 왜 그런 사람을 자기방으로 보냈냐고 속이 상한다고 하시면서 하소연을 하시는데......
30분간의 대화중에 얼마나 재미있는 말들을 하시는지 오늘은 그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가감없이 쓰려고 합니다.
"머 저런게 있노. 서울에서 바로 미끄러져왔나" (무슨 빽으로 자기방에 왔나) "개 대가리 썰컹 삶아 놓은거 같이 찐떡 찐떡하다" (밥맛 없다)
"밉다카니 업자칸다" (미워죽겠는데 자기랑 같은방에 살려고 왔다)
"주먹으로 담 뚫는 소리를 하고 자빠졌다" (되지도 않는 소리한다)
"부랄있으면 자지있지" (담배 피우는 사람이 성냥있어야지)
"바람에 침 뱉는 소리한다" (마음에 와 닿지도 않는 얘기한다)
"얻으러 와도 이쁜게 있고 주러와도 미운게 있다" (주는거 없이 밉다)
"혓구녁에 똥 묻었나" (처음부터 반말로 얘기했다)
"늙은쥐가 독 뚫는다"(보잘것 없는 노인도 뭔가를 할 수 있는 삶의지혜가 있다)
"쌀 반동가리 쳐 먹었나" (반말로 얘기했다)
"주막 강생이" (천하다)
"어두운 밤에 홍두깨 들받는다" (어처구니가 없다)
"한국바닥에 저렇게 찔둑거리는거 없다" (보기 싫다)
"내가 87평생 떡국을 먹어서 남이 속 잘알고 평가 잘한다" (나이가 많아 눈치가 빠르다)
"7월에 들어온 머슴이 안주인 속곳 걱정한다" (할일이 없어서 별걱정 다한다)
"집 나가는 며느리 보리방아 쪄놓겠나?" (책임감이 없다)
등등 정말 우리가 들어보지도 못했던 말들을 어찌나 힘도 안들이고 술술하시든지 자기는 하소연을 하러 왔지만 우리들은 웃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늘 생각하는거지만 87세 연세에 너무 정신도 맑고 기억력도 대단하신 할머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 어려서부터 사용하던 말인가 본대 사전에도 없고 고사성어도 아닌데 어쩜 그렇게 문장마다 재미있게 적절하게 넣어서 이야기를 하시는지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아마 어디에 말잘하는 노인 뽑는 대회있으면 정말 맡아놓고 그랑프리감입니다. 심사위원들의 전원일치로 고민하지 않고 대상받을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우리 이*희 할머니의 소원대로 이모모할머니는 조금 차도가 나아지면 다시 자기방으로 갈꺼라는 약속을 받은 후에 종종걸음을 치며 올라가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늙는게 참 아까운 할머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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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아프지 마시고 오래오래 사시면서 재미있는 말씀 많이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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