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밤이 깊어갑니다
성산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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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7 00:00
겨울 밤이 깊어갑니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춥고 쌀쌀한 날 아랫목 따듯한데 배깔구 누워서 재미있는 소설책 읽고 있을 때 "찹쌀떠~억 메밀묵!""찹쌀떠~억 메밀묵!"하며 구슬픈 목소리로 겨울 밤의 정막을 깨는 찹쌀떡 장수가 나와야지만 마땅한데, 지금은 똥개 짖는 소리만 요란한 겨울 밤입니다.
마침 그래도 아까 낮에 식당에서 고구마 삶은 것을 한개씩 나눠줬는데 히히 나만 몰래 세개를 주머니에 넣고와서 그걸로 찹쌀떡과 메밀묵을 대신하여 먹습니다.
각설하고,
오늘 우리 김장했어요. 외부 자원봉사자 없이 정말 우리 직원들끼리 쏠쏠하게 재미있게 김장을 해서 땅에 묻고 김치냉장고에 꽉꽉 채우고 아주 겨우살이 준비를 단단하게 했습니다.
언제나 김장은 3일 걸립니다. 첫날은 다듬어서 배추 절이고 그다음 날은 배추씻고 속 장만하고 드디어 3일째 되는 날은 맛있게 김장속 넣어서 김치독에 꽉꽉 눌러 놓았다가 알맞게 익을 때 손으로 쓰윽 찢어 먹으면 으흠~ 둘이 먹다가 하나 죽으면 3시간 만에 알 수가 있을 정도로 정신없이 맛이 있답니다.
김장하는 날은 또 돼지고기 삶은게 있어야 구색이 맛으니까 돼지고기 삼겹살 삶아서 할머니들하고 아주 맛나게 먹고 시잡 안 간 우리 이쁜 여직원들은 신부수업 따로 받을 것 없이 솜씨쟁이 선배들한테 배우고 익히며 공짜로 신부수업받고요. 아주 누이 좋고 매부좋은 날이였답니다.
우리 시설에서 처음으로 겨울을 맞는 직원들은 김장담그기가 처음인지라 낯설고 물설어서 뭐든지 어설픕니다. 이때 나는 김장담그기 2년차니 3년차니 하면서 성로원에서 김장 여러번 담근 자랑이 이어집니다.
이때 우리의 장화숙양 ! "고까짓 것도 김장담근 거라고 자랑이라고 하냐? 나더러 성로원에서 몇 번 김장 담궜는지 물어봐다오" 하는게 아닙니까? 그래서 그옆에 순애양이 "장언니! 성로원에서 김장 몇 번 담갔어요?" 하며 물었겠지요.
"나! 14년!!!!" 험. 험.
"어머나! 그럼 언니! 이제는 김장담그는 거 도사겠네요. 양념을 뭐뭐 넣어야 맛있는 데요?"
"엉! 가만있어봐.(생각을 깊게 한다) 있잖아. 나는 김장독에 넣는 것만 전공이라서 내 전공외에는 다른 건 알고 싶지 않아!"
"아~~~예~에" (김장담그기 초년생들이 모여서 쑥떡쑥떡댄다) *^^*
어쨌든 생전 나오시지 않던 할머니들도 김장을 한다니까 궁금해서 나와봅니다. 그러면 직원들이 노란 배추속잎에다가 굴을 하나 넣어서 싸드리면 너도 나도 좋아하시면서 아이들 같이 좋아하십니다. 아마 예전에 김장하실 때 온 동네 사람들이 품앗이로 김장을 해 주러오면 김장하는 집이 꼭 잔치집 같은 분위기였기에 그런 분위기를 느끼시는 것 같더라구요. 그러다가는 양푼이 하나씩을 들고 오셔서 김치를 한쪽 씩 달라고 하십니다. 한사람 드리면 너도 나도 한포기씩 달라는 바람에 크게 인심을 쓸 수가 없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분을 드리니까 양푼이 들고 검정 봉다리 들고 줄을 섭니다.
우리는 이걸 드려야 되나 말아야 되나 생각중인데 할머니들끼리 심판을 합니다. "그러면 안되지. 우리는 배추 대가리 따면서도 안달래는 데 당신은 아무것도 한 것도 없으면서 양푼이 들고 다니면 안되지" "아이구 양심도 없다. 낮에 식당에서 먹으면 되지 뭘 달라고 봉지를 들고오냐" 이러면서 당신들 끼리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해결을 다 보는 바람에 우리는 그냥 쉽게 넘어갔습니다. *^^*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한 김장덕에 이제 한 겨울에 날씨가 추워도 김장 걱정은 안해도 됩니다. 김장때문에 몇일 동안 수고하고 애쓴 우리 직원들! 지친 몸 푸욱 쉬고 내일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