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에서 오신 손님

본문 바로가기
성산일기

커뮤니티

  >   커뮤니티   >   성산일기
성산일기

태백에서 오신 손님

성산홍보실 0 657
 날씨가 무덥습니다. 코로나 재감염이 유행을 하는 요즘 웃을 일이 없는데 오래된 성산일기를 끄집어 내 봅니다.

태백에서 오신 손님(2000.08.18.)

     여름이 무르익어 갈 즈음 태백에서 90살이 다 된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셨습니다. 뭐라할까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를 연상케하는 작은 눈이 매섭고 너무 말라서 신경질적인 할아버지가 갑자기 들이닥쳐서 막무가내로 자기는 여기에 살러왔다고 하시면서 태백에 있는 시설에 있었지만 늙어서 죽을때가 되니 이제는 자기 고향 경북이 가까운 우리 시설에서 있겠다고 떼를 쓰십니다.

 

아무리 서류절차도 필요하고 그 시설에서도 할아버지가 여기에 오신걸 알고 있었야되니 무슨 일이든지 순서껏하자고 해도 들은척도 안하시며 죽어도 이쪽에서 죽을테니 알아서 하라고 배짱을 부리십니다.

 

연세가 많아 함부로 대할수가 없어서 우리는 그 시설에 전화를 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라고 연락을 취해놓고 기다리는 몇일 동안 할아버지는 그날부터 자기가 우리시설의 노인이나 된 것처럼 아무꺼리낌 없이 생활을 하시는 겁니다. 태백의 할아버지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 고 여기에서 무던히도 잘 계시는 우리 할아버지들에게 트집을 잡고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속이 상해서 어쩔줄을 몰라하며 핏대를 올리면서 화를 내기가 일쑤고 정말로 평범한 성격이 절대로 아니더라구요.

 

그런데 몇일후에 강원도 태백에서 총무님과 간호사님이 그 할아버지를 모시러 저녁나절에 오셨습니다. 나이가 한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간호사님의 본격적인 너스레가 시작이 되는 순간입니다.

 

"어머나 할아버지가 여기에 계셨네. 지금 태백에서는 할아버지를 찾느라고 난리가 나고 태백시장님까지도 태백의 영웅 할아버지를 찾아서 모셔오라고 전국에 전단도 배포했는데 세상에 통일의 일꾼이 여기에 이렇게 계시면 어떻게 해요?"

 

"매일같이 조국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애를 쓰더니 결국은 통일이 될려고 이렇게 50년만에 김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게 되고 통일의 물꼬를 트지 않았냐고.... 결국 이렇게 세상을 바꿔놓은게 다 할아버지의 노력 덕분이라구..."

 

"나는 벌써 할아버지가 우리 시설에 들어오실때 아~ 이분은 보통분이 아니구나 어쩌면 이 나라를 위해 뭔가 크게 일할 분이라는 느낌을 팍 받았다"는둥

 

시장님이 얼른 모시고 오라고 했다면서 "강원도의 태백 영웅이 뭐하러 알아주지도 않는 대구바닥에 와서 이렇게 망신살이 뻗쳤냐"는둥 정말로 이거는 무슨 코미디도 아니고 그 너스레는 너무나 웃기고도 진지해서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막 띄워주니까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내려올줄도 모르고 한수를 더 뜨십니다."아 내가 벌써 통일의 기운이 있는걸 계시를 받았다"면서 또 그놈의 천리교 교리책을 막 꺼내서 펼치는 거예요.

 

그러자 그 간호사님은 "할아버지 됐어요. 그 책에 다 나와있는거 봤으니까 이제는 태백에 가서 마저 기도를 해서 통일의 날짜가 언제인지 다시 계시를 받아야되지 않겠냐고 어서 가서 날짜 계시를 받자" 고 하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늦은 시간에 할아버지를 차에 태워서 모시고 갔습니다.

 

보통 노인시설의 직원들이 너스레는 수준급으로 떠는 거는 익히 아는 바지만 그렇게 재미있고 천연덕스럽게 너스레를 떨면서 할아버지를 꼬시는 간호사님은 정말 처음봤습니다. 그 간호사님의 말에 쿵짝을 맞춰주며 옆에서 줄기차게 거들기는 했지만 정말 너무 재미있어서 뒤집어 지는줄 알았어요.

오죽하면 그분의 싸인을 받아놨을라구요.

 

한 분의 노인이라도 외면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멀리 강원도 태백에서 몇시간을 달려와 모시고 가는 그 열정들을 보며 어느 시설이나 다들 자기가 모시고 계신 노인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