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 한그릇
칼국수 한그릇
90이 다 되신 신어르신은 참 미인이십니다 백발머리에 숱이 많고 키가 크시며 눈코입이 이국적이라서 요즘보면 얼짱스타일입니다 직원들끼리 혹시 90세 이상 실버모델 뽑는다면 우리 신어르신 화장시켜서 내보내보자고 할 정도로 아주 귀태가 나고 이쁘십니다. 그러나 어르신은 다른 분들하고 어울리지를 않으시며 늘 혼자서 생각이 많으십니다.
어느날 신어르신에게 말을 붙여봅니다.
어르신은 예전에 참 이쁘셨겠다고 하니 그래 내가 참 예뻤다 내가 동네에서 이쁘다고 중신이 들어왔는데 그 남자가 똑똑해서 서울대에 붙은 사람이다 그런데 6.25때 총탄을 맞고 죽어버렸다 살아보지도 못하고 딸 하나 낳고 죽는 바람에 우리 시어머니가 재수없는 것이 들어와서 아들이 죽었다고 얼마나 나를 구박했다고 그렇게 10년을 살았노라고 추억하십니다.
어르신 그럼 음식도 잘하세요?
그럼 내가 칼국수를 참 잘한다 맛있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해주면 얼마나 맛있게 먹는다고?
아 예 그럼 몇일 있다가 우리 칼국수 한번 밀어볼까요?
좋~지 밀가루에다 콩가루도 섞어서 하면 더 맛있다
어르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금세라도 밀가루를 사다 반죽을 할 태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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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후 영양사가 어르신들을 모시고 칼국수를 직접 밀을 수 있게 준비를 완벽하게 합니다.
밀가루 반죽을 해서 숙성시켜놓고 홍두깨를 구입하고 얇은 도마를 구입해서 어르신들이 직접 방망이로 밀가루를 밀어서 칼국수를 만들자고 하자 어르신들은 너도 나도 밀가루 덩어리를 찰지게 뭉쳐서 홍두깨로 얇게 밀어 예전 솜씨를 다 발휘하며 칼국수장인의 모습들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치매로 요리프로그램 시간에는 번외였던 몇몇 어르신도 오늘은 수제비라도 뜬다고 양손에 밀가루를 가지고 조금씩 뜯어놓으십니다.
정말 어르신들이 예전 솜씨가 다 나옵니다. 이렇게 즐거워하시다니 제일 먼저 신어르신을 보니 입을 앙다무시고 더 찰지게 밀가루를 반죽하며 야무지게 밀어댑니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들이 자식들에게 만들어 먹이던 그 시절 그 모습들이 오버랩되며 가슴이 뭉클합니다.
이 분들이 자식들에게 한그릇이라도 더 먹일려고 얼마나 노력하며 그 세월을 이겨내셨을까 싶습니다.
김*권어르신은 옛날 생각난다 옛날 생각난다고 하시며 굉장히 즐거워하십니다. 남자어르신들도 같이 동참하며 특히 늘 담배만 피우고 프로그램에는 관심도 없으시던 황어르신까지도 팔걷어부치고 밀가루방망이를 들으십니다.
주방에서는 미리 우려낸 멸치국물에 어르신들이 방금 밀어 낸 칼국수를 연신 삶아내 큰 그릇에 한 그릇씩 어르신께 드립니다. 어르신들은 양념 한숟가락씩을 넣고 꿀떡같이 드십니다. 연신 맛있다며 한그릇 더 추가를 하는 분이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어르신들이 직접 밀어서 드시니 맛있지요? 여쭤보니 너도 나도 참 맛있다 오늘 정말 맛있다고
인사가 2배입니다. 영양사가 저녁에 육전반찬이 있는데 하나도 안드시고 다들 칼국수만 추가로 잡수신다고 성화입니다.
아 행복은 별거 아니구나 우리가 밀어낸 칼국수 한 그릇에도 행복은 넘치는구나 싶습니다.
우리 어르신들이 과거에 배고프던 시절 그렇게 밀어대던 칼국수 한 그릇이 추억을 소환시켜주고 어르신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지 우리는 오늘 또 하나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