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본 내고향, 칠곡을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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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본 내고향, 칠곡을 다녀오다

성산홍보실 0 1095
 

꿈에 본 내고향, 칠곡을 다녀오다

꿈에 본 내고향 찾아가기’-고향방문 프로그램

나들이 가기 딱 좋은 날씨였답니다. 잿빛 구름이 빛을 살짝 가려주니 땡볕을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어요. 얼마만의 나들이인지 모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원내 나눔의 숲에서만, 그나마 창문 너머로만 숲의 기운을 느끼다가 마당을 나가 산책한 지도 얼마 안 되었어요.

꿈에 본 내 고향 찾아가기라니! 그리움이 가슴으로 차오르는 말, 고향! 그곳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고향 닮은 곳에서, 기억 한 조각을 꺼내 추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프로그램이지 싶습니다.

다섯 분의 어르신으로 라인업을 꾸렸어요. 고향을 닮은 곳으로는 칠곡이 낙점되었습니다. 호국평화의 고장, 칠곡은 청일점인 정 어르신과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다부동 구국용사라 새겨진 모자와 조끼까지 착장하였으니 에이스의 선발등판 다름 아니었어요. 다부동 전투 이야기는 매번 어르신을 흥분시키죠. 재현하듯 말씀하실 때는 행복해 보였어요. 그러면 된 거 아닌가요? 함경도가 원고향이지만 칠곡은 청춘을 바친 또 다른 고향인 겁니다. 여러 번 관전한 생존기지만 처음인 듯 찐한 리액션으로 응원해드렸습니다.

칠곡의 첫 도착지는 고향의 그림자 같은 곳, 송림사였어요. 고향 땅 어디에든 절 한 곳쯤은 있지 않을까요? 소나무 숲은 푸르렀고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는 어르신들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었어요. 경내를 산책하며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흡입했죠. 산사는 어르신들에게 문턱이 높지만 송림사는 평지에 있기에 접근하기가 쉬운 명소였어요.

윤 어르신은 고색이 창연한 대웅전을 지날 때에 불상 앞에서 합장을 하셨어요. 어지럼증으로 약간 비틀거리면서도 중심을 용케 잘 잡고 두 손을 가슴에 모으셨지요. 무엇을 기원하셨을지! 어린 시절, 고향의 작은 절에서 부처님께 절하며 소원을 비는 어린 할머니를 상상하니 마음이 뭉클해지더군요. 평소에 불평이 없으신 분이시죠. 고향을 그리는 듯 조용하게 시간 여행을 하시는 것처럼 보였어요.

송림사의 법당과 탑, 고목들 사이에서 고향방문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차에서 내린 후 이동시에 휠체어가 아니면 걸을 수 없는 의지가 대단한 분이 바로 한 어르신이었어요. , 한 어르신 고향이 칠곡이랍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나들이를 누구보다도 즐기시는 듯 보였어요. 고향을 동료 어르신들과 함께 방문하였으니 감회가 얼마나 남달랐을까요? 고향산천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련하셨어요. 그러다가도 스마트폰 렌즈 앞에서는 미소 짓고 있는 표정이 마스크를 뚫고 나올 듯 밝았어요. 브이를 그리고 하트를 날리는 손이 젊은 시절 사진 꽤나 찍었을 것 같았습니다.

송림사에서 고향 닮은 자연과의 합일을 마친 후 점심식사를 하셨습니다. 고향 사람에게 초대받은 것처럼 음식이 정갈하게 차려졌어요. 곤드레 돌솥 밥에 나물과 고기반찬, 가자미조림에 숭늉까지 평소 원에서 대접했던 음식들과 큰 차이는 없었어요. 모처럼 나들이에 색다른 음식을 대접해 드렸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유가 있지요. 어르신들의 치아 상태를 고려한 상차림이었어요. , 윤 어르신은 부드러운 음식을 가위로 잘게 잘라 주어야만 식사 하실 수 있답니다. 평소 식사하실 때 습관적으로 음식에 대한 불평을 하셨던 분도 드시는 것에만 집중하며 누구보다도 맛나게 드셨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니 그림자조차 납작하게 만드는 더위가 기다리고 있더군요. 아무리 더워도 어르신들의 고향땅 밟기 체험을 막을 수 없었죠. 옛 정서를 풍기는 집들 사이에서 윤기를 흘리며 자라는 농작물을 보니 고향에 한발 더 다가갔지 싶어요. 커다란 잎을 이고 있는 호박을 보며 반가운 듯 호박이다, 라고 외치는 분이 계셨어요. 반가움이 담뿍 담긴 소리였답니다. 흔한 풍경이지요. 하지만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분들에게는 호박, 고추, 옥수수가 푸르게 자라는 텃밭조차 그리운 고향친구를 만나듯 새롭지 않았을까요? 어르신 손잡고 밭이랑 사이를 언제든지 수시로 산책할 수 있는 날을 염원해 봅니다.

햇빛을 가려주던 구름이 모두 자취를 감추어 버렸어요. 기온이 하루 중 최고를 기록하는 시간이네요. 눈에 초록빛을 가득 채운 후 차로 조금 이동하여 호수에 닿았어요. 바로 송림지 혹은 동명저수지라 하지요. 호수 위에 요즘 유행하는 우드데크가 설치되어 있었어요. 다섯 분의 어르신들은 휠체어에 앉고, 워커에 의지하고, 직원의 손을 잡고 호수 위를 걸었답니다.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니! 달라진 풍경이지만 나무다리(데크)를 지나며 저수지에 얽힌 사연 하나씩 떠올렸기를 바래봅니다. 호수 끝까지 가볼 수는 없었지만 어르신들의 얼굴표정에서 힐링하는 시간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어요.

호수 산책 후, 정자에서 준비해간 귤, 바나나 등 간식을 나누며 나들이를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선발로 나선 정 투수와 라이벌 구도로 만만치 않은 말빨(?)을 지닌 분이 계셨어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또 그것을 기억하는 김 어르신도 에이스였어요. 구국용사의 이야기를 듣기 보다는 당신의 젊은 한 때를 추억하고 싶으셨나 봐요. 미국, 멕시코를 여행했다던 김 어르신은 마음 속 어딘가에 저장된 여행 기억을 꺼내 펼쳐 놓으셨어요. 가까운 거리였지만 여행의 긍정적인 힘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에이스급 할머니와 성이 같은, 고향이 청도이신 김 어르신은 어린 시절 일본에서 살다가 오셨답니다. 원에서는, 살기 좋은 일본에서 왜 나왔냐며 어머니를 원망하는 말씀을 수시로 하셨어요. 감정이 고조되면 신세한탄을 넘어 심한 욕도 하실 정도로 인지상태가 불안정하셨지요. 그런데 오늘은 누구보다도 나들이를 즐기셨어요. 다음 고향땅 밟기 프로그램 진행시에는 청도를 방문하여 고향의 좋은 기억을 꺼내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의 기억을 덮어줄 수 있는 청도의 남다른 추억 하나쯤은 있을 테니까요.

모든 어르신의 고향을 일일이 다 방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 분 한 분의 고향을 직접 찾아 가 볼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겠죠. 그리할 수 없는 현실이 아쉽기만 합니다.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 고향에 대한 추억 한 자락을 남기고 꿈에 본 내고향 찾아가기프로그램 1막이 끝났어요. 2, 3막의 또 다른 고향땅 찾아가기 프로그램을 기대해 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어르신들이 고향땅을 밟고 위로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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